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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카브리해의 섬나라 아이티. 그곳에 2백여 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지난 1월 말 전 세계에 전해졌습니다. 화면을 통해서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끔찍하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천 명의 사상자가 있다고 했고 조금 후엔 수만 명으로 그 수가 늘었습니다.

아비규환(阿鼻叫喚). 다른 말은 필요 없었습니다. 처참하고 나약한 그들은 세계에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의사로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아이티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경황없이 나서게 된 길. 처음에는 좀 어리벙벙했었죠. 아이티로 떠날 수 있겠냐는 권유를 받은 지 3일 만에 모든 것이 결정됐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모인 우리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지원단은 모두가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아이티의 공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아이티로 가는 길은 더 멀었습니다. 이웃나라인 도미니카로 들어가 육로를 통해 2박 3일이 걸려서야 도착을 했죠. 국경을 넘으며 여권 검사 같은 절차는 없었습니다. 얼마나 절박한 사정이었으면 외국인의 출입에 제한이 없어진 것인지, 정상적인 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의료팀을 꾸리자마자 환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말도 안통하고 생긴 것도 전혀 다른 저희를 찾아와 무조건 치료를 부탁하는 걸까요. 정말 잘해주고 싶은 마음뿐 이었습니다. 팀원 모두 그런 마음을 갖고 환자를 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을 그들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움에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리는 환자들.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떠날 때 보여줬던 맑은 눈빛에는 감사와 따뜻함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면서 환자는 점점 더 밀려들었고 더 좋은 치료를 해주지 못하는 것에 우리 모두는 안타까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그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여긴 왜 이렇게 없는 게 많은 거야’, ‘이 사람들 모두 좋아질 수 있는 사람인데... 조금만 더 하면 다 나을 수 있는 사람들인데...’,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없는 게 많은 거야’라고 속으로 외칠 때마다 그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해갔습니다.

4일째 길에서 쓰러진 젊은 여자를 어느 수녀님이 휠체어에 태워 우리 팀으로 왔습니다. 한 눈에 봐도 너무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처치는 다 했지만 우리가 살릴 수는 없는 환자였습니다. 독일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그녀는 사망했습니다.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우리나라였다면 그렇게 쉽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진료를 처음 시작하면서 제가 단장으로서 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구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모습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우리를 자책하지도 말자는 의미로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픔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저희를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뜨거운 열정만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우리보다 도움의 역사가 긴 다른 나라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준비해 보리라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또 우리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더 많은 힘을 보태 줄 수 있게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힘든 생활을 같이 해봐야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지원단의 구성원 모두는 그 누구도 자기 일을 미루는 일 없이 조용히 맡은 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 서로를 도우며 힘을 주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박수안 교수님, 노준승 선생님, 박정현 선생님, 김현실 선생님, 이규선 약사님, 안미정 간호사, 김성미 간호사, 이지수 간호사, 박성우 간호사, 문유리 간호사, 하태경 선생님 모두 참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팀은 참으로 좋은 팀이었습니다. 그런 팀의 단장으로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고, 그 곳에 우리의 도움은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고 언제고 또 이러한 일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따뜻한 마음만으로 도움을 주는 정도는 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체계적인 준비가 미리 있어야 할 것이고 도움을 주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도움을 받는 이의 입장이 되어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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