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세의 몽골 산모 울지바야르. 그녀의 양막이 파열된 것은 한국의 지방행정연수원에서 연수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이었다. 보호자 하나 없는 낯선 타국, 이역만리에서 그녀가 느꼈을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
아이를 갖기에는 늦은 나이, 그리고 첫 임신. 그래서 몽골의 가족들은 한국에 연수를 떠나는 그녀를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울지바야르에게는 꿈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행정연수를 마치고 고국에 돌아가 낙후된 몽골을 선진화시키는 꿈. 그 꿈은 울지바야르 자신만을 위한 꿈이 아니었다. 몽골의 푸른 초원을 달리는 아이들을 위한 꿈이었고, 뱃속에 태아를 위한 꿈이었다. 그런데 그 꿈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양막이 파열되어 응급실을 찾는 처지가 되었다니···. 고국의 가족들이 걱정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녀의 가슴은 얼마나 큰 상처가 생겼을까?

산모가 너무나도 위급한 상태로 성빈센트병원 응급실을 찾았을 때, 그곳에는 다행히 이성종 교수가 있었다. 이 교수는 그저 우연히 자신의 당직날 산모가 찾아 돌보았을 뿐이고. 이처럼 당연한 일을 두고 행정안전부장관 표창을 받은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며 한사코 자신의 공을 숨긴다. 그러나 이성종 교수의 침착하고 신속한 처치가 없었다면 울지바야르가 치료를 마치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다른 전문가들은 말한다.
상황은 심각했다. 양막이 파열되어 감염이 되면서 자칫 패혈증(어떤 경로에 의해 감염된 세균이 혈액내로 침범하는 병.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사망에까지 이르기도 함)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상태였다. 신속한 대처가 없었다면 산모와 태아 모두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방행정연수원에서 연수를 받던 산모의 위급사항에 잘 대처해주었다며 행정안전부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저 부끄럽기만 하네요. 양수가 터져서 태아는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고 죄송하죠. 그래도 패혈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병원 관계자 분들이 협조해주어서 산모가 무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입니다. 상은 사실 병원의 모든 분들이 받아야할 상이지요."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한 아이를 묻은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그 큰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그럼에도 울지바야르는 고국에 돌아가 행전안전부에 편지를 한 통 써서 보냈다. 비록 아이를 잃었지만 이성종 교수와 성빈센트병원을 통해 한국의 정을 배웠다고, 그 정은 마치 엄마의 품처럼 따뜻해서 아이를 잃은 아픔을 치료할 수 있었다고 편지에는 적혀 있었다.
때로 울지바야르의 경우처럼 지독한 아픔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산부인과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희망과 사랑의 장소이다. 그런 산부인과에서 일하는 이성종 교수의 꿈은 사랑이 담겨 있는 집처럼 사랑이 가득한 병원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아직 치료하지 못하는 부인암을 연구하고 치료해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건강을 되돌려주어, 진정으로 희망과 사랑이 샘솟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가 가장 열망하는 꿈이다.

1995년 강남에 있는 대형 백화점 하나가 무너져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 가까이 있던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에서는 응급실 뿐 아니라 운동장과 주차장까지 환자들로 가득 찼었고, 의료진은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가며 환자들을 돌보기에 바빴다.
당시 의과대학 1학년생으로서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 있었던 이성종 교수는 의사의 삶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가장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얘기한다. ‘힘들고 바쁘고 지칠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생명을 돌보아야 한다는 소중한 미션을 가지고 있기에, 스스로 지쳐서는 안 되고 매 순간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런 소명의식을 가지고 오늘도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있는 이성종 교수.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며, 또한 여성으로서의 건강함을 지키고자 산부인과를 찾는, 궁금한 것도 많고 걱정되는 것도 많은 환자들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이성종 교수를 생각하면, 몽골 산모 울지바야르가 가슴 깊이 새기고 간 정이 멀리서도 느껴지는 것 같다.









